고란사

  김운남

목탁소리가 고란사 마당을 가라 앉혔다

낙화암의 애환은 여승의 불경이 되어 객을 맞이하고

백마강에서 솟구친 안개는 절 마당을 누비는데

몸까지 오그라드는 불경소리에 두 발이 얼어붙었다

두고 가세요 힘겨운 세상사

두고 가세요 수많은 번뇌

잠자리 잡는 마음으로 극락보전으로 들었다

햇빛이 뒤 따라 들어

더욱 빛나는 아미타불에 삼배하고

고개 들어 바라보니

관세움보살 나무아미타불 귓가에 흐른다

뒷걸음으로 나와 번들거리는 돌계단을 내려서니

오랜 세월 눈물범벅이 된 노송 한그루가

백제의 애환을 드러낸 채

지팡이를 짚고 외다리로 적막하게 서 있다

낙화암 정자가 손잡아 주지만 여전히 쓸쓸하다

행여 절벽 바위틈새 고란초를 만날까

극락보전 모퉁이를 돌아들었으나

한사코 몸을 숨기는 고란초

절벽사이로 발만 보이도록 엎드려

약수 퍼 올리는 쇠바가지를 기다리다

한 모금 하렸더니

바가지 손잡이가 길어 입에 닿지 않는다

너 먼저 마시게 한 후 나 한 모금 받아 마신다

아하! 남은 세상 이렇게 살아가라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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