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여자고등학교 교사 김칠선

중학교 여름시절, 학교가 일찍 끝나면 몇 명의 개구쟁이들은 만성리해수욕장으로 줄달음질 쳤다. 가는 길에 난관은 큰굴을 지나는 것이었는데, 컴컴한 굴속에서 가끔 떨어지는 차가운 물방울을 맞을 땐 간담이 서늘해지는 무서움으로 발걸음을 빨리하여 굴속을 벗어나려 애썼다.

마침내 탁 트인 환한 굴 밖으로 나오면 안심된 마음과 함께 깊이 구덩이 파진 곳에 돌멩이를 주어 던지며 소원을 빌었다. 그 깊이 파졌던 구덩이가 지금은 메워지고 바로 그곳에 여순사건 위령탑이 서있다. 

여수가 고향이고 한참 배우며 기억해야할 중학교 시절에 그 누구도 만성리 큰굴을 지나 깊이 파인 구덩이의 역사에 대하여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나는 항간의 소문대로 그곳에 돌멩이를 던지고 소원을 빌었던 것이다. 왜 나는 이러한 어리석은 행동을 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도 풀지 못하는 여순사건의 숨은 아픔일지 모르겠다 여겨진다. 빨갱이라 낙인찍히면 모든 것이 끝나 버렸던, 심지어 연좌제로 핏줄이라도 튀었으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던 분위기 속에서 누가 감히 입에 올려 그 역사를 가르치려 했겠는가? 그래서 나는 억울하게 죽은 많은 고향의 선열들이 묻힌 구덩이에 돌을 던지며 철없이 산자의 소원을 빌었던 것이다.

이제 여순사건 70주년을 맞았다.

다행히 여수지역사회연구소에서 펴낸 ‘다시 쓰는 여순사건보고서’를 읽을 수 있었고, 여수작가회의에서 주최했던 ‘여순사건 다크 투어’에도 참여하여 ‘의미 있는 하루’로 고향 여수를 돌아보기도 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제인 정부’의 영향으로 작년 민예총에서 주최한 해양공원 기념 행사장에도 다녀왔다.

곧 정년을 앞둔 고교 교사로서 요즘은 여순사건에 관한 이야기도 종종 학생들에게 들려줄 수 있어 참 다행이다. 특히 ‘사회·문화’ 시간에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하여 ‘여순사건’을 소재로 삼으면 다양한 시각에서 말할 수 있어 나름 의미가 있게 된다.

거시적 입장에서 ‘기능론’으로 본다면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단정을 합리화 하면서 오직 진압해야할 ‘여순반란사건’으로 볼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측면에서 나타난 정부군의 과잉진압으로 무고한 생명 다수가 죽었다는 데에 방점을 찍으면 ‘여순 사건’이 되는 것이다.

‘갈등론’ 측면에서 분석한다면 일제 강점기 때의 사회주의에 대한 지식인들의 일반적 호감과 해방이후 민족주의 관점에서 단정 반대의 상식적 안목 및 사회 변혁의 좌절 등이 저항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여순 항쟁’이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아울러 미시적 관점으로는 일제 강점기에 순응하며 관직에서 갑질하던 자가 해방 후에도 미군정의 효율적 지배를 위한 도구로써 옷만 바꿔 입고 행세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쾌했던 마음과 소통하지 못한 정부가 동포에게 총부리를 겨누라는 관계의 모순에서 나타나는 상징적 상호작용론도 존재했을 것이다.

사실 이 모든 분석에 따른 대화는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사회현상 속에서 조화와 균형을 추구해 본다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얼마 전, 제주 4.3항쟁 70주년 기념 문학선집으로 제주 작가회의에서 발행한 ‘그 역사, 다시 우릴 부른다면’과 작가가 만난 4.3사람들로 ‘돌아보면 그가 있었네’라는 책을 읽었다. 독후감으로는, 우리 집에서 바라보이는 제주 연락선의 저녁 고동소리가 그래도 터져라 울어대는 제주의 소리로 들리는 반면, 우리 여수는 아직도 무언가의 눈치를 두려워하며 그저 훌쩍거리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같은 세월 몇 개월 차이인데 여수의 다양한 소리는 왜 이리도 조화되지 못하는지. 혹시 선열들의 하나같은 소리 ‘다시는 여수 고향 땅에 우리에게 닥쳤던 일이 있어서는 안돼’라는 지하 속의 공감보다 살아있는 자들의 이해관계로 역사를 재단하고 있지는 않는지.

요즘 다행이도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위한 모임과 대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아무쪼록 진상규명의 법적 근거를 먼저 갖고, 그에 따른 성격규정과 차후 기념관 및 평화공원 조성 등의 구체적인 작업이 균형 있게 이루어졌으면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70년 전 여수 시민 모두가 공권력에 의한 피의자로서 학교 운동장 등에 줄서서 사상 검증을 받았던 사건인 만큼 이를 풀어내는 것도 지금의 여수 시민 모두의 몫이라 생각된다.

이런 생각으로 나는 여수의 소시민으로서 9월부터 지인들과 함께 위령탑에서 소규모 위령행사를 갖으려 한다. 마음속으로는 어린 시절 돌멩이 던졌던 일도 사과하고 10월이면 터져 나올 공식행사들의 비공식 마중물로써의 역할도 해보고 싶어서다.

조동화 시인의 ‘나하나 꽃피어’처럼, 나 같은 여수 소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위령탑을 찾아 토론하고 얘기하다 보면 결국 여기저기에서 꽃핀 여론들로 특별법이 제정되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오순도순 화해하는 기념관이 세워져 우리 여수의 아픈 역사가 치유되지 않겠는가.

여순사건은 몇 명의 지도자에 의해  풀어나갈 사건이 아니다. 그러므로 전문가랍시고 한쪽의 시각으로 끝없는 갈등의 꼬리를 물어내는 모습도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없다. 열린 마음으로 진상조사를 통해 드러나는 여러 현상들에 대한 다양한 시각에서 합의된 타당한 결론으로 역사의 정리를 해 가는 게 바른 자세일 것이다.

끝으로, 제주에서 오늘도 돌아오는 연락선의 고동소리처럼 우리 여수시민 모두도 여순사건의 해결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소리 내어 크게 한번 외쳐보았으면 한다.

“제주 4.3의 울음처럼, 여수도 울고 싶다.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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