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앞둔 이들이라면 아늑한 시골로 귀촌해 맘 편히 안락한 노후를 지내려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촌에 오면 농사나 농업을 하며 살아야한다고 생각해서 "귀농"의 개념으로만 생각하는데 이 역시도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농촌이나 어촌에 와보면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농촌에 살면서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도 부지기수다.

율촌면 평촌마을 부녀회장인 신형자(64)씨 또한 엄밀히 말하자면 귀농보다는 귀촌에 해당되는 은퇴 부부이다.

“시골이 좋아 그냥 살러왔었다. 이곳은 살아 숨 쉬는 동네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걷어 올리면 초록색 잎들이 나타난다. 대문 밖을 나서면 삭막했던 아파트 촌과 달리 푸르른 정원이 펼쳐진다. 귀촌의 삶이란 편안함이 묻어나는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전라남도 장흥 출신인 그녀는 강진 출신으로 건축업에 종사했던 남편을 만나 부산광역시에서 40여년을 생활하며 요식업에 종사했다. 은퇴 이후 살 곳을 물색하며 시골로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남편을 설득했다. 2014년 그런 마음으로 시골로 귀촌했다.

지인의 소개로 율촌면 평촌마을에 전답을 매입하고 헌 집터를 마련했다. 경운기, 건조기, 농약살포기 등 농기구 구입하는데 큰 비용을 지불했다. 농기구 대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굳이 구입할 필요가 없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

건축업을 했던 남편의 도움을 받아 거실을 새로 만들고 안방을 확장시키는 등 2개월간 리모델링을 거쳤다. 한옥 가옥의 구조를 유지한 채 고풍스런 소품을 통해 옛스런 멋이 나타나도록 나름 신경을 썼다.

평촌마을의 지리·생활·문화적 평가를 내리자면 평촌마을 80호가 거주하고 있다. 상평마을, 하평마을, 문화마을 세 개 마을로 나뉜다. 동쪽으로는 여수국가산단을 산이 둘러 막고 있어 환경오염 우려가 적다. 서쪽으로는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와온해변과 여자만이 나타난다. 여수·순천간 전용도로 진입이 가깝고 여수공항 가는 길도 20분 이내로 사통팔당 지역이다. 그러다보니 현지인보다 타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많은 상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행정구역상 여수지만 순천시내버스 94,95번 2대가 운행하는 반면 여수시내버스는 32번 1대만이 운행하고 있다. 시골 어르신들이 이용하는데 불편함이 많다. 자연스레 시내버스 따라 순천이 주 생활권이 돼 버렸다. 그녀는 “역차별 아닌 무관심으로 무언가 잘못 된 것 아닌가”라고 항변했다.

귀촌 후 점차 귀농인이 되어가고 있는 그녀는 여수시 농업기술센터가 펼치는 귀농귀촌교육, 강소농교육, 농업대학, 유기비료제조과정 등 강의를 수강했다. 농업인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나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됐다.

첫 농작물 갓김치 재배는 냉혹했다. 갓 수확에서 유통·판매까지 전 과정을 겪고 난 후 세상 보는 눈이 달라졌다. 순천 해룡면 농산물공판장서 갓 한단 묶음을 350원에 판매했다. 그동안 기울인 노력의 대가치고는 너무나 허탈했다. 이런 농산물유통시스템으로서는 도저히 경쟁력이 없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 그녀는 의기투합하는 주민들과 함께 절임배추 식품제조업시설을 갖추려 하고 있다. 이 시설물이 마을기업 조성의 디딤돌이자 마을 대표상품으로 브랜드화시키는 마중물이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거주하는 마을과 지역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이 생기면서 마을공동체를 새롭게 변화시켜 보려는 의욕이 불끈 솟아올랐다. 평촌마을 부녀회장에 율촌면 자치위원으로 감사를 맡고 있다. 솔선수범과 친화력은 과거 요식업을 통해 몸에 밴 운영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귀촌 후 주변에서 너무 나서는 것 아니냐는 시샘도 있다. 본인 스스로 지역사회 동화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낸 것 같아 만족스럽다.

“와서 보니까, 율촌이 여수, 순천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홀대 받는 느낌이더라. 여수시에서도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고 있다”

그녀는 율촌면 자치위원 활동에서 나온 율촌역사 활용방안에 대한 관심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여수시가 옛 기차길을 자전거도로로 조성하고 있는데 덕양까지만 연결된다. 덕양에서 율촌까지 연장시켜 준다면 문화재로 등재된 율촌 역사를 만남의 광장으로 조성해 활용할 수 있다. 주말이면 농어민들이 수확한 장터 운영으로 주민 수입창출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사항을 덧붙였다.

김병곤 기자  bibongsan8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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