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데, 건너편 노점상하시는 어르신 아직 안 나오셨나요? 글쎄요. 방금까지 있었는데 잠시 물건 가지러 갔나 봐요. 곧 올 겁니다"

기다린 틈을 타 서시장서 대지 건어물을 운영하는 김순자 씨를 오랜만에 만났다. 1년 7개월만에 만난 어르신은 점점 늙어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가만히 방구석에 앉아 있으면 녹슬어 부러. 하믄, 자기 하고픈 것 해야제. 가만 있으면 병나” 그 당당함은 여전했다.

잠시 뒤 가게서 물건을 가져온 박순덕(72) 씨가 좌판 진열대 천막을 걷어내고 슬슬 장사 준비를 한다. 인기척을 느꼈던지 힐끗 쳐다보며 머시다요, 나는 할 말이 없는디......

잘못하면 인터뷰가 불가능할 것 같아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어머니, 그냥 살아오신 이런 저런 얘기 듣고 싶어서요. 아이고, 그래? 그럼 나가 1등감이여. 묻는 말에 답하면 되지. 긴장감이 이완됐는지 슬슬 말문이 이어진다.

“나가 말이여 41살에 혼자가 됐는데 서시장에서 30년 노점상을 애인 삼아, 영감 삼아 그렇게 살아 왔제. 영감이 술을 너무 좋아했어. 담배는 안 폈어도 그 눔의 술하고 얼매나 정이 들었는지 간경화로 먼저 갔당께”

“남편을 먼저 보내고 아이들 양육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했어. 그때는 5백 원짜리 고무 슬리퍼를 신었지. 지금은 만원이 넘는 신발인데 나에게 투자는 엄두도 못 냈지” 서럽지만 눈물 훔쳐가며 네 자녀의 강인한 어머니로 든든한 기둥이 됐다.

서시장에 처음 나왔는데 얼마나 쪽팔리고 창피한지 손님이 다가오면 도망갔다가 한참 뒤에야 나타나곤 했던 일화를 꺼냈다.

“내가 물건 파는 건 자신 있어. 근데 이제 나이가 드니까 허리도 아프고 물건 옮기는 게 힘들어 예전 같지가 않아” “이 장사는 얼마 벌었냐가 아니라 얼마 팔았냐야” 고객들이 이 것 저 것 찾다보니 상추, 감자, 당근, 고추, 버섯 등 15종류에 이르렀다.

그래도 이 중에서 뭐가 잘 팔리는지 효자 종목을 묻자 슬그머니 턱을 쭉 돌려 앞을 향한다. 정육점? 퍼뜩 감이 온다. “상추가 제일 잘 나가”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관계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빙그레 웃고 만다.

그녀는 매일 새벽 4~5시면 시장 상회를 찾아 물건을 땐다. 이후 첫차로 시장에 나오는 나물을 찾아 미리 구입해야 한다. 아침 식사를 한 뒤 본격 장사에 들어가 저녁 7시 무렵에 철수한다.

수십 년 동안 추우나 더우나 사시사철 똑 같은 장소에 두 모녀가 나란히 앉아 손님을 기다린다.

△30년째 서시장 노점상을 하고 있는 박순덕씨와 딸

서시장에서 그녀의 이름은 희진 엄마다. 좌판 바로 옆에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 희진 씨가 배추와 무청 시래기, 우거지를 쟁반에 담아 진열해 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했던 희진 씨는 언능 보기에도 일반 사람들과 구별되는 모습이다. 그녀의 애간장을 태운 딸이다. 그녀를 잘 아는 동네 사람들은 엉구 엄마라 불렀다. 그녀를 혼자 둘 수 없어 서시장에 그녀를 데리고 나왔다.

“30년 내 곁에 있다 보니 이제 제법 사람이 됐어. 셈 계산은 안 되지만 가격 표딱지를 붙여놨더니 그래도 주위에서 많이 도와줘. 그래도 가끔 씩은 만원 짜릴 오천원에 팔기도 해”

고개를 돌려보니 무청 시래기를 구입하는 손님들을 향해 희진 씨는 ‘감사합니다~잉, 고맙습니다’를 연거푸 건네고 있다. 제법 손님 대하는 손길이 야무졌다.

“시장 사람들이 다 좋아. 니 것 내 것 없이 잘 챙겨주지” 고객들과 시장 상인들이 “우리 아가씨가 최고”라며 붕어빵이나 야쿠르트를 건네 따스한 정을 표시해 고맙다고 말한다.

앞으로 계획을 물어봤다. 가슴속 깊이 감춰뒀던 속내를 꺼내자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했던지 눈시울이 붉어진다. 

평생의 한이 될 수 있는 딸을 향한 모정의 가슴 사무치는 한마디가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

“내가 먼저 가고 나면 남겨진 딸을 생각하니 가슴이 울컥 막혀. 울 딸이 나보다 먼저 가면 모를까. 그래도 곁에 있으니 다행이지”

그녀는 다른 자녀들에게는 아직 얘기를 못했지만 힘이 부치면 딸과 함께 요양원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 비용을 마련하기 서시장 노점상을 계속 했는데 얼추 마련됐다고 귀띔했다. 

당신은 정말 이 땅의 위대한 어머니이십니다.

김병곤 기자  bibongsan8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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