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동 환경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김상근씨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허무했던 인생으로부터 나의 존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누군가 나의 이름을 명명해 줄 때에 가능하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 것, 존재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 삶은 새롭게 변화된다는 사실이다.

희망도 꿈도 내팽개친 채 20년 남짓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이를 여수지역사회가 보듬고 힘을 합쳐 새로운 인생길로 변화시켜 미감이 되고 있다.

김상근씨가 제작해 기증한 종이공예작품이 중앙동 주민자치센터 분위기를 화사하게 만들었다.

전남 신안군 대흑산도 출신인 김상근(64)씨는 중앙동 환경지킴이다. 자발적으로 교동시장을 비롯한 시내 집하장을 돌아다니며 쓰레기 불법 투기하는 주민들에게 올바른 배출요령을 홍보하는 등 중앙동의 환경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다.

초창기 인근 상인들과 노점상들로부터 “당신이 뭔데 이래라 저래라 얘기하며 사진 찍냐” 고 불만을 들었다. 궂은 날씨에도 어김없이 활동하는 김씨의 순수한 뜻을 시장 상인들도 점차 이해하기 시작했다. 교동시장 집하장은 쓰레기 저감 노력에 동참하면서 불법 투기 배출량이 줄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교동시장 상인들은 김씨를 골목대장이라 부른다. 완장 찬 감시자가 아니라 시장 상인들의 친근한 이웃이자 말벗이 됐다.

목포공고를 졸업한 김씨는 군대 가기 전 고향 신안서 홍어잡이 어선을 탔다가 날카로운 낚시 바늘에 오른손 중지, 약지, 새끼 손가락이 연거푸 걸리며 중상을 입었다. 기업체에서 손가락 장애자를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신안군 환경미환원으로 일하면서 경운기를 개조해 ‘경운기 청소차’를 만들었죠. 이걸로 여관,음식점 쓰레기를 수거하기도 하고 상여차로 활용했을 정도니 당시 섬 환경이 모든 게 부족했었죠” 김씨는 40대 초반까지 홍도, 흑산도를 둘러보는 관광선 안내가이드와 환경미화원으로 생활했다.

김상근씨가 작업중인 종이공예 작품들

지난 1995년 여관 숙박비 미수금을 받기 위해 들렀던 여수에 대한 이미지는 강렬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방랑의 길에 접어들었다. 뚜렷한 직장이 없었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삶의 의욕도 용기도 점차 사라지며 서울, 부산, 대전 지하도나 역사에서 노숙생활을 했다. 부산 역사에서 노숙하던 당시 옆 사람이 밤새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향후 내 자화상이 아닐까 몸서리쳤다.

지난해 10월 자포자기 상태로 여수를 찾았다. 뜻밖에도 여수는 김씨에게 희망의 불씨로 다가왔다.

여기에는 손양원 목사의 순교지로 널리 알려진 여수 새중앙교회 교인들과 중앙동 주민자치센터의 힘이 컸다. 일정한 거주지가 없던 김씨에게 교회가 나서서 숙소와 편의를 제공했다. 자치센터 직원들은 따스한 말 한마디로 용기를 불어주고 관심을 가져주자 한 사람의 인생이 점차 변화됐다. 잃어버렸던 희망과 삶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준 것.

이후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저소득층에 지원하는 ‘기존주택 전세임대사업’에 선정돼 지난 5월 교동시장 내 건물 2층에 18평 보금자리를 마련해 숙소 겸 종이공예 작업실로 쓰고 있다.

불편한 손 때문에 가위질조차 힘들지만 교동시장서 수거한 재활용품을 활용해 각종 종이, 목공예품을 제작하고 있다. 특별히 전공하거나 배운 것도 아닌데 눈썰미가 대단해 응용능력과 창의성이 남다르다. 십자가를 덧입힌 학, 멋진 범선, 거북선, 포도가 주렁주렁 맺힌 포도나무, 사과나무, 개나리 등 수많은 공예품을 만들어 진열을 원하는 곳에 전달했다.

민원인들은 중앙동 주민센터에 전시된 공예품을 보고 깜짝 놀란다. 한 입 베어 먹고 싶을 정도로 탐스런 사과, 오렌지 작품에 감탄하며 환경지킴이 솜씨란 답변에 또 한번 놀란다. 중앙동 주민센터를 찾았던 주철현 여수시장도 김씨의 공예품을 보고 한 점 구입해 시장실에 전시했다고 한다.

김씨는 “선친께서 손재주가 좋으셨는데 그 재능을 제가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일단 작품 제작에 들어가면 만드는 재미가 쏠쏠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여건이 허락된다면 많은 이들에게 종이공예를 가르쳐주고 싶고 전시회도 갖고 싶다”고 의욕을 앞세웠다.

김병곤 기자  bibongsan801@naver.com

<저작권자 © 여수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