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수산 대표 박병화씨

어둑어둑 어둠이 물들기 시작한 신월항~.

천막으로 둘러친 컴컴한 사무실 한 켠에 난로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바지락 첫 수확작업을 했다는 박병화(50)씨의 몸은 이미 녹초가 됐다.

새벽 4시쯤 여수를 출발해 임대한 경남 남해 어장에서 고된 작업을 마치고 저녁 7시 무렵에 도착했단다. 내일 새벽에 또 남해를 향해 가야한다는 박씨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봄이면 입맛을 돋우는 싱싱한 도다리, 여름에 허약해진 기력을 보충하는 보양식으로 먹는 하모, 가을이면 집나간 며느리를 돌아오게 만든다는 전어, 겨울에는 별미로 통하는 쫄깃쫄깃한 새조개와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물메기가 사시사철 박씨가 도·소매로 판매하는 어패류다.

남해 어장에서 수확한 새조개가 입맛을 돋운다.

박씨는 청소년 시절 잘 나가는 축구 유망주였다.

“자랑 같지만 당시 여수중학교가 체육 특기자들로 구성된 구봉중학교 축구부와 겨뤄 처음으로 이겼죠” “이때 눈에 띄어 여수대표로 동부육군 대회 출전한 경험이 축구선수로서 꿈을 갖게 됐죠”

하지만 호사다마랄까,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축구를 위해 박씨는 고등학교만 3개 학교를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잠시 여수공고를 거쳐 김제상고 축구부에 들어갔으나 얼마 안 있어 해체돼 축구부가 있던 전주공고로 전학가게 됐다.

이후 대학에 진학했으나 이미 오른쪽 무릎과 발목 부상으로 더 이상 축구선수로 뛸 수 없는 좌절을 맛봤다. 포지션은 센터포드, 수비형 미들필드. 수비수를 거쳤다. 축구를 위해 꿈을 꿨지만 이래저래 시간을 허비하고 1996년에야 비로소 늦깍이 졸업을 했다.

지금은 다 완쾌돼 여수조기축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새벽마다 운동으로 몸을 다지고 있지만 부상만 아니었다면 박씨의 인생은 또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잠시 인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객지생활을 청산하고 부친이 계신 여수로 내려와 새마을 중앙회에서 13년간을 근무했다. 안정적인 단체 운영을 위해 수익형 회관 건립을 모색하던 중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일조권과 조망권을 둘러싼 민원이 발생해 갈등을 빚었다.

이후 건물 인허가 사용승인이 지연되면서 이를 해결하려다 박씨는 원치 않던 돌발 상황이 발생해 6개월간 시련을 겪기도 했다.

지난 2013년 박씨는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중대한 결단을 하게 된다. 늘 주변에서 보고 자란 어패류 도소매에 무작정 뛰어들었다.

남해 어장에서 수확한 패류

“애초 패류 도소매 사업에 판매가 잘 될 거라는 부푼 꿈이 있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현실은 냉혹 했습니다”

“그나마 투기적인 요소가 강한 바다사업에 안정적인 투자운영을 통해 큰 위기나 시련을 겪지 않고 지금까지 운영해온 것도 다행이죠”

“새조개는 소매나 지인을 통해 판매하고 있고 일부는 농협 로컬 푸드에도 납품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판매를 시도했으나 홍보가 미흡했던지 여의치가 않더군요”

박씨는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으려고 지난 2015년부터 직접 남해 어장 8ha를 임대로 운영하고 있다. 임대한 남해 어장에서 첫해 바지락을 수확했고 이어 지난해 년 초 새조개를 추가해 올해 첫 수확을 거둬들였다. 올 3~4월이면 지금까지 투자한 비용을 거둬들일 수 있어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비수기인 여름철에는 직접 판로영업에 나선다. 서울 가락동 시장을 비롯해 인천, 홍성 등 대도시와 새조개 소비지역을 찾아가 판로를 개척할 예정이다.

“젊었을 때 돈 빌려줬다 떼이고 빚 보증 잘못으로 아내의 맘고생이 심했습니다”. “바다사업 이후에는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져 경제적 어려움을 참고 견뎌온 아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요”. 1남 2녀를 둔 박씨는 늦둥이를 봤다. 큰딸이 16살, 막내딸이 7살이다. 4살, 5살 터울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장기적인 사업구상에 대해서도 속내를 얘기했다. 우선 안정적인 판매망을 갖추고 직접 어장을 운영하면서 작업하는 것인데 인력을 충원해 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또 낙후되고 허스름한 구형 공장을 내후년 정도 신규로 건축해 반듯한 공장을 갖추려고 한다.

그리고 패류 외 활어까지도 취급할 생각이며 추가적으로 공장에서 가공된 상품세트를 만들어 판매하는 계획을 수립해 놓았다.

김병곤 기자  bibongsan8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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