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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꾼 아닌 ‘전복장인’ 으로 불러주오!여수서 첫 시작한 민간 전복 종묘 초기 멤버…25년 경력 베테랑
사료 제공과 청소가 일상, 묵묵히 보탬 준 아내가 든든한 버팀목
우리이웃 -돌산 주현석(47)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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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로를 개척하고 전복 양식업자들에게 좋은 가격에 팔아 해치우는 장사꾼 솜씨는 별로 없습니다. 오로지 건강하고 우량한 종묘로 키우거나 폐사 없는 배양기술향상에 관심을 지닌 전복장인이라 자부하죠”

돌산 군내리와 남면 화태도를 잇든 화대대교 아래 여수전복종묘장을 찾았다. 햇빛 그늘막이 드리워진 4백 평 전복종묘장은 바다와 인접한 콘크리트 육상수조식이다. 맑고 깨끗한 해수를 끌어와 한 번 더 여과시킨 다음 공급한다. 여과기 2대가 쉴 새 없이 우~웅 소리를 내며 전복들에게 해수를 공급한다.

대학 때부터 일찍 전복종묘에 눈을 떠 25년째 생업이 됐다는 주현석(47)씨, 대규모 시설 종묘장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스스로 장사꾼이 아닌 전복종묘 배양 노하우를 지닌 장인으로 불러주기를 원한다.

종묘장이 크거나 작든 간에 일장일단이 있다. 아이 키우듯 정성을 들여 키우니 크기가 고른 편이라 양식장 업주들이 그의 우량 종묘를 찾는다. 특히 가온시설이 설치된 큰 규모의 종묘장에서 나온 전복보다 폐사량이 적고 건강해 활동성이 좋다. 단점이라면 규모에 따른 생산량이 확정돼 있어 추가 생산이 어렵다는 점이다.

전복종묘는 2월 채비를 시작해 11월말 양식업자에게 판매될 때까지 작업이다. 3월 10일경 채묘를 시작한 이후 5월까지는 부착규조판에서 배양한다. 6월부터 전복에게 사료를 제공한다. 요즘 하루는 사료 먹이주고 그 뒷날은 8시간 청소한다. 이런 나날이 출하되기 전까지 매일 반복된다. 11월에 키워놓은 150만 마리 전복들은 일주일 내 완도 전복양식장으로 전량 판매된다.

과거 규조류로 키울 때는 1.2~1.5cm 정도에 전복판매가 됐다. 하지만 2005년 사료가 보급된 이후 기본 크기가 2.5~3cm 이상으로 자라야 출하가 가능하다. 전체 비용의 30% 차지하는 사료비가 추가된 것. 그렇지만 20년 전 개당 300원 했던 전복 가격은 사이즈가 두 배 커져도 여전히 300원에 거래되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런 일은 과거 전복을 일일이 떼어내는 박리 작업이 지금은 0.5mm단위로 분리하는 기계채가 비치돼 박리와 분리작업이 수월해졌다 것에 위로를 삼는다.

대학에서 해양토목 전공과 무관한 길을 거닐게 된 계기를 들어봤다. 군 제대 당시 가두리양식이 붐이라 작은아버지 양식장에서 2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전복종묘를 접하게 됐다. 도움이 될 것 같아 국립수산진흥원 배양장에서 6개월간 기술을 익혔다. 배양기술이 아까웠는지 선친이 집 뒤에 50편 양식장을 조성해줬다. 첫해 1,500만원 순수익을 남겨 자신감이 생기자 1998년 전복종묘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지금도 매일 종묘양식 일지를 기록하며 비교·관찰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한 가지 알아둬야 할 재미있는 것은 민간 전복종묘가 여수에서 먼저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여수 전복종묘 초창기 멤버라 할 수 있죠. 그래서 전복종묘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죠. 국립수산진흥원 배양장에서 전복종묘를 연구했던 분들이 나와 직접 전복종묘를 시작한 것이 시초입니다. 완도가 전복양식 주산지가 되면서 전복종묘도 인근 지역에서 배양되기 시작했죠”

국내 전복 생산량의 80% 이상이 완도나 진도에서 생산된다. 여수지역 전복양식이 활성화 되지 못한 이유를 묻자 전복이 먹는 다시마나 미역 먹이 공급이 원활치 않기 때문이란다. 여수 관내 전복 관련 어업인은 20명 남짓이지만 실질적으로 15어가 미만이 활동 중이다.

지난 2002년 태풍 ‘루사’, ‘매미 ’피해 보상금과 화태대교 보상 목돈을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투자손실을 보기도 했다. 지인들과 공동투자로 야심차게 섬 주변 바다에 전복종묘를 뿌려 자연산 전복 수확을 기대했지만 전복을 노린 도둑들의 절도 행각과 이런 저런 이유로 실패했다. 한 우물만을 팠어야 했는데 투자실패 후 욕심은 금물이란 값진 교훈을 얻었다. 2015~2016년 전복종묘장 시설을 새로 갖췄고 인근에 형제들과 함께 공동으로 종묘장을 조성해 운영 중이다. 운영 능력과 생산가능 범위 안에서 종묘장을 운영키로 했다.

전복양식이나 종묘도 경쟁이 치열하다. 올 초 전복 과잉생산으로 판로가 없어 가격폭락을 가져왔다. 수출 길은 적고 대부분 국내에서 소비되는 상황이다. 예전에는 비싼 고급음식으로 통했지만 요즘은 삼계탕에도 들어가는 흔한 생물이 됐다.

“여전히 종묘장이나 양식장의 초기 투자비용이 커 일반인에게 진입장벽이 높은 편입니다. 제가 아들만 셋인데 아직 전복종묘에 관심을 갖는 자식은 없네요. 행여 문을 두드린다면 선친께서 자신에게 기회를 줬던 것처럼 자신도 아들에게 앞길을 열어주고 싶다”고 말한다.

끝으로 부인 김옥진(45)씨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털어놨다. “손이 날래고 맵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어요. 그만큼 부지런하고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손재주가 뛰어난 편입니다. 지금껏 제가 추진했던 일에 반대 없이 묵묵히 힘이 돼 준 사람입니다. 고맙다는 말을 이 자리를 빌어서 전하고 싶다”고 속내를 얘기했다.

김병곤 기자  bibongsan8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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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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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별자매 2018-09-05 15:59:11

    여수에서도 전복사업을 오래전부터 하고 잇었네요 멋진 사장님이 사모님에게 잘하시고 앞으로도 사업 번창하세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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