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서 태어나 여수에서 선생하고 결국 여수에 묻힐 내 인생에 후회 없이 마무리 지을 일이 무엇이겠는가? 하여, 결심하면 온 몸으로 부딪혀나가는 장점을 살리는 길로 산자를 위한 복지활동(자원봉사)과 죽은 자를 위한 명예회복(여순사건 희생자를 위한)의 두 길을 선택하고자 결심했네. 나 자신 먹고 살 길은 정리되었으니 순수하고 맑은 영혼으로 선택한 이 두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네”

내년 정년을 앞둔 현직 교사이자 중화요리 집 봉사단 김칠선(62) 봉사팀장이 후배에게 진심을 담아 편지를 보냈다. 그가 앞으로 펼쳐 보이고 싶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한 두 갈래 길이다.

탁자에 꺼내 놓은 서류 뭉치가 제법 두툼하다. 지난 1995년 고흥도화중학교 재직 당시 첫 작성한 방문 대상자 명단을 비롯해 도화면 마을 지도와 봉사자 학생, 1997년 7월 날짜가 선명한 스크랩 해 놓은 신문 등 소중한 자료들을 내보이며 지나온 궤적을 설명했다.

지난 1995년 봉사활동에 나선 이후 모아온 자료들

그는 여수지역 중·고등학교 학부모봉사단 창단교사란 타이틀에 고고차이나 중화요리 집 봉사팀장이란 독특한 명함을 지녔다. 2002년 여천고 모자동행봉사단, 2008년 여수고 자원봉사어머니회, 2012년 여수여고 가족봉사단, 2014년 여천중 가족봉사단 창단의 주역이다.

“사실 학부모님들이 먼저 봉사활동을 해야죠. 중학생들은 불편한 이들의 고충을 직접 체험해보는 학습이 중요해요. 봉사가 즐겁고 뿌듯함을 가져준다는 걸 느껴야죠” 그는 학생들이 마지못해 평가 점수를 위한 봉사는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올해 그는 새롭게 ‘이웃사랑실천 대학생자원봉사단’을 출범시켰다. 여수에서 발생한 독거노인 고독사를 접하고 경각심을 갖게 됐다. 자발적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관내 대학생들에게 다양한 봉사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참된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목적이다.

“월호동의 열악한 무의탁 독거노인 80명 중에서 도움의 손길이 간절한 5명을 선정했다. 2인 1조로 조직된 대학생들이 2주 간격으로 방문해 집안청소와 말벗이 되어 주고 있다.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와 한영대학 학생들이 중심이다. 앞으로 관내 다른 동지역에서 도움의 손길을 건넬 수 있도록 더 많은 이 지역 학생들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얘기했다.

그는 자신의 살아온 여정을 “인생사 塞翁之馬(새옹지마)”로 표현했다.

전교조에 참여했던 1990년대 초반 폭풍 같은 시기가 있었다. 이혼과 설상가상 해직교사로 교단을 떠나야 했고 서울 입시학원 강사로 생계를 걱정해야했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축 늘어진 어깨와 막막한 시선 그리고 술잔이었다.

전라남도 교육감 장석웅 당선인, 여수시민운동의 대부 격인 한창진 씨가 당시 전교조 활동을 함께 했던 동시대 장본인들이다.

이런 고달픈 와중에 독실한 크리스챤 아내와 만남이 평생 인연으로 이어졌고 덤으로 세 아들까지 얻게 됐다. 4년 반의 해직기간이 끝나고 지난 1995년 고흥도화중학교로 복직했다.

가진 게 없어 허리띠를 졸라맸다. 세 아들은 서울서 야간고등학교에 다니며 중화요리 음식 배달로부터 출발해 자수성가에 이르렀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힘든 시기에 학교에서 펼쳐왔던 수십 년 봉사활동은 운명처럼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웅천지구 중화요리 집 고고차이나 봉사단 ‘소풍’의 식사대접 사연이 독특하다.

서울서 사업에 성공한 둘째 아들이 부모 곁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고 밝혀 그는 세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첫째, 가장 맛있는 음식을 제공할 것, 둘째 훌륭한 시설을 갖출 것 셋째 돈만 아는 장사꾼이 아닌 주변을 둘러보는 사업가가 될 것을 주문했다.

아들 부부는 두말없이 곧바로 여수로 내려왔다. 지난 2015년 2월에 오픈해 어느덧 4년째 베풂을 이어오고 있다. 여수지역 사회복지시설들과 연계해 매월 셋째 주 월요일 약 60~70명 정도의 노인이나 장애인을 대상으로 짬봉, 자장면, 과일을 대접해 왔다. 지난 3년 동안 ‘소풍’에서 대접한 대상자는 1,500여명 이른다.

지난 5월 셋째주 휴무인 월요일 월호동을 시작으로 6월에는 대교동 어르신들을 초대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의 맘처럼 소풍날 같은 잔치를 열어 위로했다.

중화요리 집 고고차이나 '소풍' 봉사단

이제는 아들 3형제, 전통무용으로 어르신들을 위문하는 부인, 서빙하는 며느리 등 전 가족이 합류해 매월 셋째주 월요일 하루를 어김없이 봉사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휴무일이 봉사의 날이자 가족 만남의 날이다.

아들이 “만 명 정도는 채워야지요” 대꾸한다. 앞으로 20년 가까이면 80살 너머까지 소풍 날을 운영해야 한다. 말만 들어도 고맙고 자랑스럽고 벅찬 마음이다. 그동안 묻어둔 사연에 품었던 계획들을 쏟아내니 가슴이 뻥 뚫린단다. 아, 시원하다!

그의 향후 관심사는 복지활동과 여수사건 명예회복이다. 향후 여수시의 사회복지활동이 민·관차원에서 전문적으로 이뤄진다면 그동안 경험을 살려 민간 위탁 부문을 운영해 보고 싶어한다.

아울러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노력을 작가협회 및 민예총과 협력해 미력하나마 여수시민의 명예를 회복시키는데 동참할 뜻을 내비쳤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식전 재능기부 공연 행사

중모리 장단에 맞춰 흥에 겨운 어르신이 어깨춤으로 화답할 날을 기다리며 지난 2년간 국악학원에서 공을 들여왔다. 그래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사철가 이 대목만은 경종을 울리는 차원에서 꼭 불러보고 싶단다.

“국곡투식 허는 놈과 부모불효 허는 놈과 형제 화목 못 허는 놈 차례로 잡어다가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버리고...”

김병곤 기자  bibongsan8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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